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어 위키백과 (문단 편집) ==== [[임진왜란]] ==== [[https://ja.wikipedia.org/wiki/%E6%96%87%E7%A6%84%E3%83%BB%E6%85%B6%E9%95%B7%E3%81%AE%E5%BD%B9|임진왜란]] 전체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매우 유리하게 왜곡해서 설명하고 있는 문서가 많다. 좋은 예시는 각 전투 문서들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승전은 과장어리게 선전하고 패전은 어떻게든 폄하한다. 예를 들어 한산도 해전은 일본군 배가 73척이었다는 서술은 쏙 빼고 야스하루 직속부대 1500명이 참전하고(실제는 그보다 더 많다.) 손해 대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평양성 전투 등과 같이 일본군이 패배한 전투는 아예 기술도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제 1차 진주성 전투. 또 행주대첩의 결과를 권율이 행주산성을 포기 이런식으로 적어놓았다. 마치 결과만 보면 일본이 이긴 전투 같다. 심지어 부산포 해전은 일본의 승전이라고 적어놨다. 그 근거가 심히 가관인데 '이순신이 부산을 공격했으나 장수 하나 죽고 점령하지 못한채 퇴각함 → 고로 방어한 일본의 승리' 심지어 출처는 일제강점기 시절 출판된 서적이다. 그 외에도 참가군의 규모를 안적어 놓는다거나 하는 황당무개한 곡필이 너무 많다. 한산도 해전은 일본이 1500명만 참가했다고 하고 지금은 아예 임진왜란 개관의 조선군 피해 수준을 불명이라고 얼버무렸지만 과거 문서에는 십수만명 수준으로 서술해 놓았었는데 예시로 동래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무려 '''2만'''이었다고 서술한다. 당연히 동래성 전투 당시 조선군 수는 좋게 쳐 줘야 3천명 정도이다. 탄금대 전투에 참전한 조선군 수는 대체로 8천 ~ 1만 6천으로 보는 게 시각인데 기술에 '''수만 ~ 수십만''' 이라는 설도 있다는 식으로 써놨다. 인용을 선조수정실록이나 선조실록을 통해 해 그럴싸 한 주석을 달아놓았지만 들어가보면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웃긴 건 각 개별 전투에 서술된 조선군의 피해 숫자를 합하면 십수만명을 아득히 넘는다. 조선군의 승전도 항상 꼬투리에 안좋은 말을 써놔서 의의를 흐리게 하는 기술이 흔하다. 추함의 극치는 '이순신은 보급을 차단한 적이 없다' 부분인데, 사실 이순신은 보급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고, '''일본군이 전란내내 굶주렸던건 조선의 농촌이 너무 가난해서 약탈할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 라는 서술이다. 정작 임진년 당시 일본 기록에는 조선이 각 읍성마다 창고에 [[환곡제도|쌀을 쌓아놓고 있이다]], 평양성에 쌀이 넘쳐난다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200년동안 태평기의 관료시스템으로 잘 돌아가던 조선의 농작물이 양에 안찰 정도라면, 150년의 전란기 동안 조선에 쌀을 수입해야될 정도로 피폐해진 일본의 농촌들에서 전국 다이묘들은 호화판 주지육림을 때려먹으며 싸웠다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보면 신뢰성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어 위키백과를 비롯한 타 언어 위키백과에서 임진왜란 각 전투들에 대한 서술을 어디에 입각해서 썼는가를 보면 그 결과가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